노동계급이 차별당하는 현실 『차브』 독후감과 서평사이



영국에서 정치인과 미디어를 통해 무기력, 무식, 범죄적인 계급으로 낙인찍힌 하층 계급 ‘차브(CHAV)’, 노동조합 활동가인 오언 존스는 ‘차브(이세영·안병률 옮김, 북인더갭 펴냄)’라는 책을 통해 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사는지, 그들을 노리는 건 무엇인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웃 블로거의 글을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읽어봤는데 긴 분량이지만 읽는 내내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이 책은 차브 혐오가 절대 우연한 현상이 아님을 증거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현상이 이 사회의 뿌리깊은 불평등의 산물임도 보여줄 것이다.

- p19 ‘들어가며’에서


이 책의 원제가 되는 ‘차브(Chav)’라는 단어를 나는 2011년 『르몽드 드플로마티크』 한국판에 실린 서평기사에서 처음 접했다. 당시 나이 26세에 불과한 청년 오언 존스가 쓴 이 책은 영국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지구의 소금’이라 칭송되던 노동계급이 어떻게 ‘지구의 쓰레기’로 전락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 속에서 생생하게 그려낸 그해 최고의 정치학 도서로 선정되면서 확고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 p415 ‘옮긴이의 말’에서


1장 섀넌 매튜스의 이상한 경우

2007년 마들렌 맥캔과 2008년 2월 섀넌 매튜스의 실종사건을 비교하는 글로 이 책의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책에 나오지만 섀넌 매튜스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실종 사건에 비밀이 존재하지요. 그러한 점을 통해 노동계급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알 수 있죠.


마들렌은 상류층이 휴가를 보내는 포르투갈 알가르베의 리조트에서 사라진 반면, 섀넌은 웨스턴요크셔의 듀스베리 거리(잉글랜드 북부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옮긴이)에서 실종됐다는 점이다.

(중략)

마들렌의 실종은 그냥 흥미 위주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 사건은 국가적인 상처가 되었다.

(중략)

그에 반해 섀넌 매튜스의 실종은 얼마나 빈약한 관심을 이끌어냈는가? 2주 후 그 사건은 마들렌의 경우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의 기사가 나왔을 뿐이다.

- p23~25에서


섀넌의 배경은 그런 스토리를 다루는 기자들의 체험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중략)

듀스베리 모어에 거주하는 노동계급은 사람들이 섀넌 매튜스 사건에 무관심한 이유를 뼈저리게 체득하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언론인들이 하는 일이라곤 자신들을 혐오하는 일뿐임을 잘 알았다.

- p28에서


2장 계급전사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은 노동계급을 제대로 챙긴 적이 없습니다. 겉으로 챙겨준다는 말을 하지만 속내를 보면 특권층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죠. 지금의 노동당도 보수당에 비해 덜할 뿐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내용이 곳곳에 들어가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악마화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형성한 1980년대 대처리즘의 실험을 뒤돌아보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다. 그 핵심에는 노동계급 사회와 산업, 가치와 기구에 대한 공격이 자리잡고 있다. 더 이상 노동계급은 자랑할 만한 무엇이 아닌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었다.

(중략)

역사를 대충 훑어봐도 보수당은 특히 노동계급의 위협에 맞서 언제나 ‘특권층의 이익’을 감싸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9세기 내내 보수당은 투표권을 부유층에서 서민으로 확대하자는 의견에 열렬하게 반대했다.

- p60~61에서


왕년의 계급전사 솔즈버리 경은 20세기초 제조업 노동자들의 3분의 1이상이 보수당에 투표하는 현상을 보고 놀랐다. 이런 현상은 다시금 우리를 익명의 정치가가 던진 주제로 되돌아가게 한다. 즉 보수당은 “딱 그만큼의 사람들에게 딱 필요한 만큼을 주면서” 선거에 승리한다는 사실이다. 보수당은 언제나 사회적 조직으로서의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아주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개인으로서의 노동계급을 회유하여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 p63에서


3장 정치인 vs 차브

2장의 후속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맨 앞에 나오는 폴리 토인비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군요.


이제 노동계급은 더 이상 정치적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고 더 이상 존경할 필요도 없다. 그리하여 상류층은 마치 18세기라도 된 듯 우월한 입장에서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되었다.

- 폴리 토인비의 말(p105)


4장 진퇴양난에 빠진 계급

인류역사에서 계급이 생긴 이래 노동계급은 한번도 좋은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거의 조롱하는 경우가 많았죠. 지금처럼 혐오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인터넷이나 서적을 통한 다양한 계급혐오나 조롱을 소개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특정 계층이나 지방을 혐오하고 조롱하는 분위기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은 찬사를 받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사람 대접을 받은 적도 없었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 때까지 노동자들의 삶은 그 어떤 기록에도 거의 언급된 적이 없었고, 그나마 언급이 되었다 하더라도 캐리커처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 p151에서


노동계급을 업신여기던 분위기가 이제 그들을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것으로 급변한다. 대처리즘의 대두와 이른바 ‘노동계급다운 특성’, 다시 말해 노동계급의 가치와 제도, 산업과 지역사회에 대한 대처리즘의 공격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략)

‘차브’ 현상의 등장과 더불어 사람들이 노동계급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편견들이 하나로 통합된다. 2003년 말에 출범한 ‘차브스컴’이란 웹사이트에는 ‘영국의 마을과 도시를 집어삼킨 무식한 최하위계층’이라는 태그라인이 달려 있다. 현재는 차브스컴을 대신하여 ‘차브타운스’라는 사이트에서 기고자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차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중략)

작가 리 복의 『차브에 관한 작은 책』은 지금도 파산한 체인식 서점 보더스의 계산대 위에서 오랫동안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가장 최신판은 현재까지 10만부 이상이 팔렸으며, 8쇄까지 인쇄가 됐다고 관계자들은 자랑한다.

(중략)

차브스컴을 만든 이들 또한 차브에 대한 혐오감으로 가득한 책을 출간했다. 『차브! 영국의 새로운 지배계급에 관한 사용자 가이드』에서 미아 윌러스와 클린트 스패너는 ‘야생에서 차브를 발견’하는 요령을 알려준다. 차브는 말하자면 짐승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 p154~157에서


심지어 특권층 젊은들 사이에서도 차브 혐오가 어떤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옥스퍼드에서는 중간계급 학생들이 노동계급 출신들처럼 옷을 입는 ‘차브 파티’를 연다.

- p169에서

  

5장 “우리는 이제 다 중간계급이다”

중간계급이라고 말하지만 노동계급 취급을 받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계급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얼마나 드러나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이 ‘차브’라는 퇴락한 집단만 남기고 시들어 사라졌다는 생각은 정치적으로 매우 편리한 허구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노동계급이 심각하게 변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중략)

현대의 노동계급은 한 가지 면에서 과거의 노동계급을 닮았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노동하며, 자신의 노동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는 것이다.

- p246에서

6장 조작된 사회

계급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 사회, 영국 사회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하게 만듭니다.


노동계급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부족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인과 논평가들은 종종 핵심을 노치고 있다. 대체 무엇을 희망하란 말인가? 예전에 그렇게 많이 존재하던, 좋은 급여를 제공하는 양질의 노동계급 일자리들이 전국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소멸해 버렸다는 것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슈퍼마켓이나 콜센터 같은 곳을 제외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 p259에서


7장 부서진 영국

노동계급에 대한 소외로 영국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글입니다. 읽고 간단히 소개하기에 난해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현실은 주변에 충분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 실업은 계급적 이슈다 그것은 중간계급이 아니라 노동계급이라면 훨씬 쉽게 직면하게 될 숙명이기도 하다.

- p296~297에서


8장 반발

노동계급에 대한 정치인들의 기만과 이주노동자의 유입은 기존 노동계급의 큰 반발을 부르기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인종차별주의를 강조한 극우 정당의 등장과 이들의 지지는 필연적인 것이라 볼 수 있겠죠.

 

노동계급의 악마화는 국민당의 성공 스토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노동계급의 문화는 지배엘리트들에 의해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되었지만, (올바르게도) 소수민족 집단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살아왔다.

- p333에서


노동계급으로서의 자부심은 지난 30년간 산산조각 났다. 노동계급이라는 것은 차츰 버려야 할 정체성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공장과 공영주택을 기반삼아 조직된 커뮤니티의 오랜 유대는 깨져버렸다. 과거 바킹이나 대거넘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노동계급이란 정체성은 삶의 중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소속감과 자존감, 그리고 지역의 다른 주민들과의 연대감을 의미했다. 이 자부심이 사라지고 생겨난 진공상태의 일부를 영국 민족주의라는 잠에서 깬 야수가 채운 것이다.

- p345~346에서


결론 새로운 계급정치?

계급정치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자꾸 변하는데 한 나라의 사회를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도 이를 이용하고 있고요. 오언 존스는 노동계급에 대한 열망에 대한 기본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악마화는 패자에게 퍼붓는 승자의 조롱이다. 지난 30년간 일터와 미디어, 정치권과 사회 전반에 걸쳐 노동계급의 힘은 지속적으로 악화돼왔다.

- p367에서


노동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혹은 사라지고 있다고 사람들을 기만하는 것은 분명 정치적으로는 유용하다.

- p369~370에서


노동계급의 열망에 대한 전반적인 재정의가 정치 의제의 중심에 자리잡아야 한다. “열망의 기본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존 크루더스는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2001년 이후 신노동당이 저지른 실책 가운데 최악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열망의 개념으로부터 의무와 책임감,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일치감 같은 공동체주의적 요소를 제거해버렸어요. 그 결과 원자화되고, 소비지향적이고, 탐욕스런 자아만 남게 된 거죠.” 새로운 열망은 공동체를 개선하고 노동계급 전체가 직면한 삶의 조건을 더 낫게 만드는 노력과 결부되어야 한다. 단순히 재능있는 개인들을 계층 사다리의 상층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 p383~384에서


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길지만 한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우리는 노동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 바로 ‘빈부격차’죠. ‘차브’는 영국의 경우를 다루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차브의 의미값에 근접한 우리말은 잉여보다는 ‘양아치’ ‘쓰레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학교를 뛰쳐나와 골목 어귀나 놀이터를 어슬렁거리는 10대 청소년들, 역한 냄새를 풍기며 공공장소 주변을 배회하는 노숙인, 엄연한 주인이 있는 사유공간을 점거한 채 망루를 세우고 악다구니늘 쓰는 철거민들은 또 어떤가. 이 몰락한 노동계급의 후예들을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범죄시·불온시하기 시작했다.

(중략)

빈곤을 타락과 범죄의 언어로 재정의하려는 움직임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도 감지되기 시작한다.

- p416~417에서


가난이 타락과 범죄로 재정의되는 순간, 가난한 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부채감은 사라진다.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의 수순은 ‘추방’이다. 추방은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추방’으로 이어지는데, 인식의 영역에서 추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눈앞에서 추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일단 눈앞에서 사라지면 관심에서도 멀어지며, 관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도덕적 공감은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추방된 자들이 아무리 고통과 부당함을 호소해도 ‘헛소리’와 ‘소음’으로 취급될 뿐이다. 약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이 사라질 때 싹트는 것은 ‘무결점 사회’를 향한 유혹이다. 잘 가꿔진 잔디밭 위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잡초를 깡그리 제거해버리고 싶다는 욕망. 이것은 아우슈비츠를 만들어낸 전체주의적 열망과 동일한 것이다.

- p419에서


‘차브’를 여러분에게 소개시켜드리는 글을 쓰면서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두 번이나 쓰고도 날릴 정도였죠. 그나마 각 장별로 단락을 골라 소개한 덕에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제 소개 글만 보기에 무슨 책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겁니다. 비슷한 서평이나 감상문을 더 읽고 책을 직접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우리 사회와 은근 비슷한 영국의 계급 사회를 보여주는 ‘차브’,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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