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이 바라봐야할 언론과 사회는? - 『민중언론학의 논리』 독후감과 서평사이

그림입니다.<br/>원본 그림의 이름: 8993463727_f.jpg<br/>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735pixel<br/>사진 찍은 날짜: 2015년 02월 12일 오후 11:31<br/>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7.0


전에 소개한 '신문읽기의 혁명 1, 2', '순수에게' 등 저서와 다양한 논문을 통해 언론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손석춘 교수의 최근 저서 '민중언론학의 논리 - 정보혁명시대 네티즌의 무기(철수와영희 펴냄)'는 정보시대 우리나라 언론이 가야할 길과 언론을 접하는 민중이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를 다룬 책입니다. 저는 제목에서 읽을까말까 망설이다 다른 분이 쓴 감상문에 마음이 넘어가 읽었습니다. 머리말에 나온 내용(특히 뒷표지에도 나온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해방 70년, 분단 70년을 맞으며 '민중언론학'을 제기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언론인이 될 수 있는 우리 시대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지금 이 순간도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모바일메신저 등으로 다양하게 '언론 활동'을 하는 모든 네티즌에게 바로 당신이 '21세기 민중'이라는 사실을, 정보혁명 시대의 민중인 네티즌이 자신과 이웃을 '민중'으로 옳게 호명할 때 비로서 개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진실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누군가 '네티즌이 곧 민중'이라는 논리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아니 그 이전에 '민중'이라는 말부터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럴수록 이 책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길 소망한다.

- 7쪽 머리말 '우리가 민중이다'에서


우리나라 언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겠는데 '민중언론학'이 뭔지 모르겠다고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행히 이 책 서론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민중'이라는 개념부터 살피고 가죠.


'민중'이란 말은 한국 근현대사의 성격을 담고 있지만, 보편적 개념으로 따진다면 영어 '피플(People)'과 조응한다. 'people'은 라틴어의 'populus'라는 말에서 비롯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변화되어 왔지만 '피지배자'라는 의미와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라는 두 의미를 모두 지녀왔다.

- 13쪽 서론 '민중언론학의 개념과 주요 명제'에서


'민중'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걱정은 안 하셨음 합니다. 물론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운동권이 자주 썼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었을 거라 봅니다. 하지만 그 이전인 일제 강점기, 나아가 조선 시대에도 썼던 단어입니다. 거기에 부정적인 색깔을 주입시킨 건 우리나라 언론기관이라고 이 책에서 말하는 군요.


네티즌, 곧 21세기 민중의 언론활동 - 바로 그것이 '민중언론'이다. - 을 위한 학문으로서 민중언론학의 뼈대가 되는 학문으로서 민중언론학의 뼈대가 되는 명제는 다음 5가지로 간주할 수 있다.


1. 정보혁명 시대의 21세기 민중은 네티즌이다.

2. 정보혁명 시대의 민중은 정보 홍수 속에서 '가장 멍청한 세대'로 명명받을 만큼 윤똑똑이가 될 가능성과 '자기 통치'라는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할 주권자가 될 가능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3. 정보혁명으로 자본주의는 '금융의 세계화'를 이루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구적 질서로 보편화했다.

4.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서 자본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권력은 언론기관을 '자발적 동맹군'으로 포섭했다.

5. 정보혁명 시대의 민중은 모두 언론활동을 하고 있다.


- 16~17쪽에서(1~5는 첫문장만 따옴.)


이 중 5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온라인 커뮤니티, 블로그, SNS 등에 기사를 퍼나르거나 주변 소식을 전하는 것도 하나의 언론활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개인 의견이 담긴 글을 다른 사람이 보고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10편의 학술논문들로 구성된 이 책은 처음에 읽으면 흥미를 느끼겠지만 갈수록 다양한 용어와 내용이 많아 읽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재미있게 봤지만 갈수록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끝까지 읽을까말까 고민했었습니다. 하지만 참고 끝까지 읽다보니 얻어가는 점이 많았습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첫 장을 펴면 '흥미로워 보이는 책 속에 이런 심오한 내용이 들어 있다니'하는 생각이 들겁니다. 이 책을 다 정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1부와 2부의 일부 내용을 넣으면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유추해볼까 합니다. 서론에는 1부와 2부에 무슨 내용이 담겨있는 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언론학계 일각에서 한국 언론을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 그 프레임으로 저널리즘 현상을 분석하는 경향이 이어지면서 대다수 국민도 모든 사안을 정파의 잣대로 보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 30쪽 '1장 : 식민사관의 확대재생산과 한국 언론'에서


한때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교회에서 했던 설교 동영상 속 발언으로 문제를 빚은 문창극 교수(전 중앙일보 주필)로 촉발된 고위층 지식인의 '식민주의 역사관' (우리 민족이 타율성, 정체성 등을 갖고 있어 외세에 기대야 한다고 보는 역사관) 논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과 보수 지식인들은 그를 감싸는 듯한 발언과 함께 KBS가 그의 발언을 왜곡보도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손석춘 교수는 이 글에서 고위층 지식인 사이에 잠재된 '식민주의 역사관'이나 이를 감싸는 언론의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 저널리즘은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 문제를 보도하는데 전혀 공정하지 못하다, 2005년 11월에 연이어 일어난 농민들의 자살과 집회 시위 중 타살사건, 그리고 2006년 7월에 일어난 비정규직 노동자의 타살 사건에서 한국 저널리즘은 노사 사이의 소극적 공정성도 지키지 않았다. 생존권을 지키려고 집회와 시위에 나선 농민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낮에 '공권력'에 의해 타살당했는데도 사회적 파장이 일어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저널리즘의 묵인과 축소 보도에 있다.

(중략)

문제는 노사관계나 경제 문제와 관련된 저널리즘을 분석하는 데도 정파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데 있다.

- 69~70쪽 '2장 : 정보혁명 시대의 언론 위기와 극복 방안'에서



한극 언론이 규제 완화, 민영화, 법인세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일관되게 제시해 여론화면서, 정작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경제정책임을 은폐하는 데 있다.

- 133쪽 '4장 : 신자유주의에 대한 언론과 비판언론학 비판'에서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의 트랜드이자 우리나라 경제가 나아갈 길이라고 포장하면서, 경제주체인 농민이나 노동자 문제에 정파성을 들이대는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3장의 경우 종합편성채널이 언론 생태계의 다양성을 키울 거라 선전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문제점을 무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요.


5장은 우리나라가 한 사건을 공론화시키는 과정이 서양과 얼마나 다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여전히 왕이나 양반 등 지배층이 민중을 계몽시켜야한다는 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공론장의 출범은 전혀 달랐다. 조선사회 내부에서 싹트고 있던 주막과 여항의 공론이 문예 공론장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향회(향촌의 교화나, 수령의 보조기구, 그리고 이를 전제로 수령이나 이서들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기능을 가졌으며 지배기구의 일부임 - 159쪽)와 민회(사랑방이나 주막 등 백성들의 공론)의 정치적 공론장으로 전개되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신문을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신문은 중세체제의 내부에서 지배세력의 한 당파인 '개화파'의 필요성과 외세의 의도가 맞아떨어져 창간됨으로써, 아래로부터 형성된 유럽의 공론장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 173쪽 '5장 : 한국 공란장의 생성 과정과 갈등 구조'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 등에서 언론과 지식인들은 여지없이 편향적인 형태를 보인다고 이 책은 말합니다. 특히 7장에서 '대자보'로 대변되는 학생의 인식과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대학이 배출해야 한다고 보는 대학 교수들의 인식이 차이가 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너무 빈곤하다는 데 있다. 일차적으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곧 '글로벌'로 여론화하는 신문과 방송 보도 때문이다.

(중략)

더 큰 문제는 한국 언론의 '갇힌 창문을 지적해야 할 대학이 오히려 그 '닫힌 논리'를 강화한다는 데 있다. 그 점에서 언론학의 책임은 다른 학문보다 크다. 한국 언론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를 곧장 '글로벌 스탠다드'로 등식화하는 상황에서 신문과 방송에 대한 산업적 접근과 연구는 많았던 반면에, 언론의 '갇힌 창문'과 특정한 여론 형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적었다.

- 233쪽 '7장 : 도구적 지식과 지식인의 도구화'에서


8장은 특이하게 언론인이었던 리영희에 대한 비판과 반비판을 다루고 있습니다. 진실이 큰 가치라고 주장한 리영희가 저서에서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점 등으로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었다고 비판한 학자들과 이를 반비판한 학자들의 논리를 분석했지요. 이를 통해 리영희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고, 언론이 가져할 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특별히 이 책에 넣었다고 봅니다.


9장 '남북통일사상의 '하부구조'와 소통', 10장 ''아기장수' 설화의 내적 커뮤니케이션'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다양한 의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공론화를 통해 접점을 찾고, 커뮤니케이션을 분석해야 한다는 점이 언론을 접하는 우리 시대 독자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네요. 10장에 나오는 '아기장수' 설화를 대다수 사람이 판단한 근거를 통해 단순히 수용하는 차원을 벗어나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설문조사를 분석하여 보았듯이 아기장수 설화는 단순히 체념이나 순종을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문학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 다만 세상을 바꾸는 데는 오랜 기다림과 치밀한 준비,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중략)

따라서 시대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각각의 시대에 아기장수 설화가 주는 '현재적 의미'는 다를 수 있다. 민중이 언제나 변혁적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모순이 표면화하고 사람들 사이에 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퍼져갈 때 아기장수 설화의 자기서사는 수동적 저항을 넘어 능동적 봉기를 추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략)

무릇 변혁 운동에서 객관적 조건이 아무리 무르익어도 주체적 조건 - 주체인 민중의 구성이 다양함은 물론, 권력의 지배전략이 일상적으로 관통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 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

- 317~318쪽에서


이 책은 '민중언론학'이 우리나라의 언론 환경과 사회 현상을 파악하고, 정보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네티즌이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깨닫길 바란다고 쓰고 있습니다. 제가 본 것이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언론을 제대로 보고 의견을 내길 바란다는 의미겠지요? 1인 미디어가 확산되는 요즘, '민중언론학의 논리'는 적절한 시기에 맞춰 낸 언론학 서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차근차근 읽어 내려가며 언론과 사회 현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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