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 - 43. 젊은이 예찬 세상과 나

단기 알바를 다니는 통에 부득이하게 한 주 쉬었습니다.

그림입니다.<br/>원본 그림의 이름: youngsters-249963_1280.jpg<br/>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80pixel, 세로 853pixel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


고대 동굴벽화나 이집트 파피루스 등에 나온다고 하는 말이다. 왜 어른들은 젊은이를 가리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어쩌면 자신들이 젊을 때와 달랐고, 지금 이들이 만든 것을 깨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젊은이를 다르게 보는 어른들 또한 존재한다. 이들에게 있는 ‘청춘’! 얼마나 아름답게 여겼으면 이런 글도 나올 정도니 말이다.


청춘(靑春)!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중략)

보라, 청춘을 ! 그들의 몸이 얼마나 튼튼하며, 그들의 피부가 얼마나 생생하며, 그들의 눈에 무엇이 타오르고 있는가? 우리 눈이 그것을 보는 때에, 우리의 귀는 생의 찬미(讚美)를 듣는다. 그것은 웅대한 관현악(管絃樂)이며, 미묘(微妙)한 교향악(交響樂)이다. 뼈 끝에 스며들어 가는 열락의 소리다. 이것은 피어나기 전인 유소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이며, 오직 우리 청춘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 민태원, 청춘예찬(한국명수필선(1930))에서


주위를 보면 지금 현실의 어려움과 맞서 싸우느라 힘든 구석이 보이지만 나름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젊은이들을 보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축에 든다고? 대단히 감사하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유독 개성있고, 훌륭하게 성장하는 젊은 도전자들이 눈이 띈다. 비록 평범한 젊은이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주변의 시선은 거의 부러움과 희망이었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배워온 지식과 살아온 환경을 기반으로 요즘 젊은이를 규정지으려 한다. 고금동서를 막론하며 시대별 젊은이에 대한 판단은 늘 있어 왔다. 88만원 세대 증 다양한 부정적 표현도 있지만, G(Global) 시대, 실크 세대 등 긍정적 표현도 다양하다.


그러다 요즘 젊은이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바로 득도, 깨달음을 일컫는 사토루(さとる)에서 나온 사토리(さとり) 그리고 달관(達觀)이다. 장기 불황이 규정지은 부정적인 낙인, 우리는 왜 그런 규정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현실을 반영했다지만 알고 보면 규정짓는 자나 집단이 만든 판(프레임)일텐데 말이다.


나는 어떤 입장에 서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젊은이를 말하고 싶다. 청춘이란 무한한 힘과 가능성을 지닌 젊은이, 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어른이 될 것이다. 어떤가? 꿈같은 현실이냐고? 천만의 말씀, 젊은이는 어떻게든 현실을 살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우리 어른이 젊은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나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


“내버려둬라, 그리고 지켜보라.”


젊은이들이 도움없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되, 모르는 것을 알고 깨우치도록, 탈선없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응원할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어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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