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나 시즌2 - 03. 우리는 그들, 그들은 우리다 세상과 나

찬바람이 살살 불어온다. 여름 내내 살랑살랑 다가오던 파도도 다시 매서워진다. 해변에서 누구는 분위기를 말하고, 다른 이는 고요함을 말하겠지.


하지만 저 해변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이도 있었다. 왜 일까? 누군가 저 해변에서 죽었다고? 바라보는 이가 유족인지, 공감하는 이인지 알 수 없지만, 표정에서 하나를 느낄 수 있었다.


‘저 너머에 사람이 있었다고....’


죽음을 비롯한 끔찍한 비극을 통해서만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이들이 있단다. 그것도 범상한 죽음이 아니라 참혹한 죽음을 통해서만. 세 살배기 꼬마 아일란 쿠르디! 너도 그런 불행한 사람이 되었구나. 다섯 살배기 네 형 갈립과 사랑하는 엄마 레한과 말이지. 네 이름과 모습은 9월 내내 아저씨의 마음을 극도로 우울하게 했어.

- 고종석, ‘고향에 묻힌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에게’(경향신문, 2015.9.13.)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었던 일을 지켜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아 있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 도종환, 화인(火印)(세월호 추모 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잊고 지내려하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이라 했던가? 우리의 이기심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참사가 벌어졌다. 상황은 다르지만 죽는 건 같은 사람이다.


아직 살아서 할 일이 많은데, 더 누릴 것이 많은데, 무엇보다 죽음을 스스로 원치 않았는데 타의로 죽어야 할까?


우리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고, 죽으라 명령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한 마음으로 살면서 이타심을 갖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일란 쿠르디가 될 수 있고, 세월호나 용산이 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타심만 갖고 살 수 없는 이기적인 세상, 어떻게 해야 이런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그들은 죽음으로 던졌다.


마음속에 이러한 것을 담아 부디 이런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길 바라며 행동으로 옮기고 얘기할 시간을 가져 보자.


우리는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이다. 산 자는 누군가의 죽음에 맞서고, 죽은 자는 고통과 슬픔 없는 세상에 잠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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