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그리스도인이 바라본 로마서 바로 읽기 『살찐 로마서 고쳐 읽기』 독후감과 서평사이

그림입니다.<br/>원본 그림의 이름: K562434879_f.jpg<br/>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722pixel<br/>사진 찍은 날짜: 2015년 10월 23일 오후 4:20<br/>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CS5.1 Windows<br/>EXIF 버전 : 0221


「한국 종교가 창피하다」, 「맨얼굴의 예수」 저자

벙커1 교회 설교자


사람들이 ‘목사 아들 돼지’라 말하는 시사평론가 김용민에 대한 종교관련 이력입니다. 직장이었던 극동방송, 기독교TV에서 나온 뒤 자신이 믿었던 기독교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그 덕에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죠. 그가 세 번째로 쓴 책 『살찐 로마서 고쳐 읽기』(이리 펴냄)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수차례 인용된 신약성경 중 ‘로마서’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진 사도 바울의 본래 의도를 찾아보자는 거죠.


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성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책 내용을 인용하면서 생각을 담은 건데 부족하다 느끼신다면 양해바랍니다.


당시 유대민족 상당수는 자력 즉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의 법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자력에 의한 구원이 가능하다함은 구원의 유일한 주체자가 신만이 아니라는 오만이었다. 바울은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그 구원의 은총에는 비유대인에게 총체적으로 '기회의 평등'이 부여됐다고 주창한 것이다.

121쪽 '신앙은 주체를 만든다'에서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은 하느님께 선택받았고, 가까이 가기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레 이방민족을 배제했죠. 바울이 누구든 하느님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앞에 언급한 '기회의 평등'을 주창한 거라고 저자는 분석했습니다.


성서적 권력관은 하느님의 주권 아래 세속통치자가 있는 서열화 구조 속에서 완성된다. 요컨대 로마서 13장도 포괄하는 '세상 권력자'는 하느님의 신임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성서 구절은 피권력자가 아닌 세상 권력자를 향한 메시지가 돼야 한다. 피권력자는 그 권력자가 하늘의 뜻을 잘 수행하고 있는 가를 따져야 할 테고, 무조건적 복종여부는 차후의 문제가 될 것이다.

175쪽 '모든 권력에 복종하리니'에서


로마서 13장 1~7절은 수많은 독재자가 지배하던 시절, 교회가 이들을 두둔하고 복종하자는 의미로 인용했습니다. 저자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당시 정권들과 결탁했던 우리나라의 근본주의 신학이 가진 논리 속 문제점을 비판하려고 관련 서적들을 인용했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라는 구절은 보다 세심하게 콘텍스트를 살펴야 한다.

167쪽에서


이 책에서 인용한 구절을 보면 복종해야 할 자가 '하느님의 임명을 받은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의 권위를 남용해 약자의 생명과 행복을 빼앗는 학정을 행할 경우 때에 따라서는 크롬웰과 같이, 워싱턴과 같이 반항의 깃발을 듣고 혁명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구절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지만, 말그대로 지배자가 누구든 무조건 복종하라는 건 아니라 말하죠.


제가 처음부터 쭉 읽어보면서 성경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관심,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가라는 호기심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 한 번만 읽기에 아쉽고 익히기 어렵다는 거죠. 그럼에도 이 책을 보려 했던 건 어쩌면 기존에 알고 있던 성경 속 말씀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겠죠? 권한다는 말은 못하지만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저작물 위젯 달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Blueman의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통계

번역기